네트워킹 자리에서도, 투자 미팅을 시작하는 첫 5분에도,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밥을 먹다가도 꼭 한 번은 받게 되는 질문이에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매일 붙들고 고민하는, 누구보다 잘 아는 내 브랜드인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말이 자꾸 길어지거든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제품은 어떤 과정으로 만드는지, 경쟁사와는 무엇이 다른지까지 하나씩 풀어놓다 보면 어느새 상대의 눈빛은 흐려져 있어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야 "그래서 내가 결국 무슨 말을 한 거지?" 싶은 순간, 한 번쯤은 겪어보셨을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아는 게 많을수록 전부 말하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문제는 듣는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내가 열 가지를 이야기해도 상대에게 남는 건 많아야 한두 가지예요. 그리고 그 한두 가지를 내가 골라주지 않으면, 상대가 아무거나 골라서 기억하게 돼요. 그래서 필요한 게 엘리베이터 피치예요.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짧은 시간 안에 내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드는 30초짜리 소개죠. 이름만 들으면 거창한 발표 기술 같지만, 사실은 브랜드를 가진 모든 대표님께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예요.
이 글에서는 엘리베이터 피치가 정확히 무엇인지, 30초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한 문장으로 기억된 브랜드들은 실제로 어떻게 말했는지를 차례대로 살펴볼게요. 다 읽고 나면 내 브랜드의 30초를 직접 써볼 수 있도록요.
Chapter 1. 엘리베이터 피치, 정확히 뭘까요?
엘리베이터 피치는 하고 싶은 말을 줄이는 게 아니라, 상대가 기억할 하나를 고르는 일이에요.
엘리베이터 피치는 30초에서 1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내 브랜드가 무엇인지 전하는 소개예요. 엘리베이터를 한 번 타는 동안 끝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죠.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요. 하나는 1854년 뉴욕 크리스털 팰리스 박람회 이야기예요. 엘리샤 오티스는 자신이 만든 엘리베이터 안전장치를 알리기 위해, 직접 올라탄 승강대를 높이 끌어올린 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줄을 끊게 했다고 해요. 장치가 작동해 그는 무사했고, 긴 설명 없이 한 번에 가치를 증명해냈죠. 다른 하나는 할리우드 이야기예요. 작가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제작자에게, 제작자가 내릴 층에 도착하기 전까지 시나리오를 소개했다는 거예요. 어느 쪽이 진짜 시작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두 이야기가 말하는 건 같아요. 짧은 순간 안에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이 이야기가 지금 더 와닿는 이유는, 듣는 사람의 주의가 예전보다 훨씬 귀해졌기 때문이에요. 떠올려보면 우리 모두 이미 그렇게 살고 있어요. 유튜브 광고는 "건너뛰기" 버튼이 뜨는 순간만 기다리고, 숏폼은 첫 장면이 심심하면 바로 다음 영상으로 넘겨요. 드라마는 1.5배속으로 보고, 긴 카톡이 오면 "그래서 결론이 뭐야?" 하며 스크롤부터 내리죠. 짧은 걸 찾고 긴 건 건너뛰는 데 익숙해진 거예요. 내가 듣는 쪽일 때 이렇다면, 내 브랜드 이야기를 듣는 상대도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무조건 짧게 말하면 될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하고 싶은 말 열 가지를 30초 안에 빠르게 밀어 넣으면 길이는 짧아져도 상대에게 남는 건 없어요. 그건 요약일 뿐이에요. 엘리베이터 피치는 그 열 가지 가운데 상대가 기억할 하나를 고르는 일이에요. 다니엘 핑크는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서 피치의 목적이 꼭 그 자리에서 설득을 마무리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상대가 대화에 참여하도록 문을 여는 데 있다고 봤어요. 30초 안에 모든 걸 말할 필요가 없는 이유죠. "조금 더 듣고 싶은데요"라는 반응을 끌어냈다면, 피치는 제 역할을 다한 거예요. 기억에 남는 '하나'를 콘텐츠에서는 어떻게 쌓아가는지 궁금하시다면 기억에 남는 콘텐츠를 만드는 법 도 함께 읽어보세요.
그렇다면 상대가 기억할 하나는 어떻게 고르고, 그걸 피치에는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요?
Chapter 2. 엘리베이터 피치는 어떻게 만들까요?
엘리베이터 피치는 누구를, 어떤 문제를, 무엇으로, 왜 우리가 해결하는지 네 가지 질문으로 만들어져요.
피치를 만들 때 기억할 건 네 가지 질문이에요.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가, 그들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나, 우리는 그걸 무엇으로 해결하나, 그리고 왜 하필 우리인가. 이 순서는 마케팅 전문가 제프리 무어가 『제프리 무어의 캐즘 마케팅』에서 브랜드 포지셔닝을 정리하는 틀로 제안한 구조이기도 한데, 피치를 짤 때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어요. 듣는 사람이 속으로 던지는 "나랑 상관있나?", "그래서 뭘 해주는데?", "다른 데랑 뭐가 다른데?"에 차례로 답해가는 순서거든요.
질문
듣는 사람의 속마음
답할 때 기준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가
"나랑 상관있나?"
나이·직업보다 상황으로 그린다
어떤 문제를 겪고 있나
"맞아, 그거 내 얘기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의 언어로 말한다
무엇으로 해결하나
"그래서 뭘 해주는데?"
기능 목록이 아니라 달라지는 결과를 말한다
왜 하필 우리인가
"다른 데랑 뭐가 다른데?"
경쟁사가 따라 하기 어렵거나, 따라 하지 않기로 한 지점을 고른다
첫째,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가. 가장 흔한 실수는 "모든 분들"이라고 답하는 거예요. 대상이 넓을수록 누구도 자기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거든요. "30대 직장인"처럼 나이와 직업으로 나누기보다, "퇴근하고 나면 요리할 기운이 없는 사람"처럼 상황으로 그려야 훨씬 선명해져요. 듣는 사람이 "아, 그거 나네" 혹은 "내 주변에 딱 그런 사람 있는데" 하고 바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해요.
둘째, 어떤 문제를 겪고 있나. 여기서는 내 언어가 아니라 고객의 언어로 말해야 해요. "유통 구조가 비효율적이다"는 만드는 사람의 말이고, "좋은 걸 사고 싶은데 어디서 사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는 사람의 말이에요.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는 쪽은 언제나 후자예요. 문제에 공감이 가야 그다음 이야기를 들을 이유도 생기니까요.
셋째, 무엇으로 해결하나. 대표님들이 가장 할 말이 많은 대목이라 가장 길어지기 쉬운 부분이에요. 그런데 이 자리에서 필요한 건 기능 목록이 아니라 결과예요. 원료가 무엇이고 공정이 어떤지보다, 우리를 만난 고객의 하루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들려주세요. 기능은 상대가 궁금해할 때 꺼내도 늦지 않아요.
넷째, 왜 하필 우리인가. 앞에서 피치는 상대가 기억할 하나를 고르는 일이라고 했죠. 그 하나가 바로 여기서 나와요. "품질이 좋아서", "정성을 다해서"처럼 경쟁사도 똑같이 할 수 있는 말은 그 하나가 될 수 없어요. 좋은 답은 다른 곳이 쉽게 따라 하기 어렵거나, 따라 하지 않기로 선택한 지점에 있어요.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고객이 우리를 고른 진짜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대표님이 그동안 강조해온 것과 의외로 다를 때가 많아요.
네 가지 질문에 답했다면 이제 한 문장으로 이어보세요. "우리는 ○○한 사람들이 겪는 ○○ 문제를 ○○으로 해결해요. 다른 곳과 달리 우리는 ○○하기 때문이에요." 처음엔 어색해도 괜찮아요. 뼈대부터 세운 다음 내 말투로 다듬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꼭 소리 내어 말해보세요. 글로 볼 땐 짧아 보여도 입으로 말해보면 생각보다 길다는 걸 느끼실 거예요. 네 가지를 어떤 순서로 꺼낼지는 듣는 사람에 따라 바꿔도 괜찮아요. 고객 앞에서는 문제부터, 투자자 앞에서는 왜 지금 우리여야 하는지부터 꺼내는 식이죠. 다만 넷째 답, 그 하나만큼은 누구 앞에서든 같아야 해요.
말로는 쉬워 보여도, 막상 내 브랜드에서 하나만 남기려면 쉽지 않죠. 한 문장으로 오래 기억된 브랜드들은 그 하나를 어떻게 골라냈을까요?
Chapter 3. 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브랜드는 어떻게 말했을까요?
한 문장으로 기억된 브랜드는 할 말이 적었던 게 아니라, 첫마디에 하나만 골랐어요.
실제 사례로 확인해볼게요.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에어비앤비도 처음엔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낯선 서비스였어요. 2008년, 당시 이름인 에어베드앤브렉퍼스트(AirBed&Breakfast)로 투자자들 앞에 섰을 때 쓴 피치덱이 지금도 공개돼 있는데요. 그 앞 장들을 순서대로 따라가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네 가지 질문이 거의 그대로 담겨 있어요.
먼저, 에어비앤비가 기능부터 이야기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볼게요. 같은 덱의 제품 소개 장에는 도시별로 검색하고, 후기를 확인하고, 바로 예약할 수 있다는 기능이 정리돼 있었어요. 이걸 앞에 내세웠다면 소개는 이렇게 됐을 거예요. "저희는 도시별로 숙소를 검색하고, 후기를 보고, 바로 예약할 수 있는 웹사이트예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른 숙박 예약 사이트와 무엇이 다른지는 알 수가 없어요. 실제 덱은 기능이 아니라 문제에서 출발해요. 덱 앞 장의 흐름을 말로 옮겨보면 이런 피치가 돼요.
"여행할 때 숙박비는 늘 부담이고, 호텔에 묵으면 그 도시의 진짜 모습과는 멀어지죠. 그런데 현지인 집에 묵고 싶어도 쉽게 예약할 방법이 없어요. 저희는 남는 방을 여행자에게 빌려줄 수 있는 웹 플랫폼이에요. 여행자는 숙박비를 아끼고, 호스트는 돈을 벌고, 둘은 서로의 문화를 나눠요. 한마디로, 호텔 대신 현지인의 방을 예약하는 곳이에요."
네 가지 질문에 하나씩 대어보면 이렇게 읽혀요.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지는 여행자와 남는 방이 있는 사람, 어떤 문제인지는 비싸고, 도시와 단절되고, 대안이 없다는 것. 무엇으로 해결하는지는 기능이 아니라 결과로 말했어요. 아끼고, 벌고, 나눈다고요. 그리고 왜 하필 우리인지는 피치의 마지막 문장, "호텔 대신 현지인의 방"이 맡아요. 에어비앤비가 덱 표지에 이름과 함께 단 한 줄로 적어둔 문장(Book rooms with locals, rather than hotels)이기도 해요. 피치에서 상대가 기억할 하나로 고른 게 바로 이 문장이었던 거죠. 누구나 아는 호텔을 옆에 세워두고 그 반대편에 자신을 놓으니, 숙박 공유라는 낯선 개념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사라진 거예요.
눈여겨볼 점이 하나 더 있어요. 이 덱에는 시장 규모, 수익 모델, 경쟁사 비교까지 모두 들어 있었지만 전부 뒤쪽으로 미뤄뒀어요. 할 말이 없어서 짧았던 게 아니라, 할 말이 많았는데도 첫마디에 하나만 골랐던 거예요.
드롭박스도 비슷한 길을 걸었어요. 창업자 드루 휴스턴은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버스에서, USB를 집에 두고 와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날 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2007년 그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에 제출한 지원서는 지금도 공개돼 있는데, 무엇을 만드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러 컴퓨터의 파일을 동기화해준다"는 문장으로 답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 사업에서 다른 회사들이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이메일로 파일을 보내거나 직접 업로드하는 방식은 결국 사람이 머릿속으로 파일 버전을 관리하게 만든다고 짚었죠. 드롭박스는 평소처럼 저장 버튼만 누르면 끝난다고요.
이 지원서 내용을 말로 옮기면 이런 피치가 돼요.
"집과 회사 컴퓨터를 오가며 일하다 보면, 파일을 USB에 담아 다니거나 이메일로 나한테 보내곤 하죠. 그러다 USB를 두고 오거나, 어느 게 최신 파일인지 헷갈리고요. 드롭박스는 평소처럼 저장만 하면 모든 컴퓨터에 파일이 알아서 맞춰져요. 따로 옮길 일도, 버전을 기억할 일도 없어요."
여기서 눈에 띄는 건 둘째 질문, 어떤 문제인가예요. "파일 동기화 기술의 비효율" 같은 만드는 사람의 언어 대신, USB를 두고 온 날의 난처함처럼 듣는 사람이 한 번쯤 겪어봤을 장면으로 문제를 꺼냈어요. 해결 역시 "저장만 하면 끝"이라는 결과로 말했고요.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다음 말은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해요.
Outro. 이제 내 브랜드의 엘리베이터 피치를 써볼 차례예요
엘리베이터 피치를 다듬는 일은 결국 내 브랜드의 기준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에요.
엘리베이터 피치는 짧게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가 기억할 하나를 고르는 일이었어요. 그 하나를 찾기 위해 던질 질문은 네 가지였죠.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가, 그들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나, 우리는 그걸 무엇으로 해결하나, 그리고 왜 하필 우리인가. 오늘 해볼 일은 하나예요. 앞에서 소개한 문장 틀에 내 브랜드를 넣어보는 거예요. 처음부터 매끄러울 필요는 없어요. 빈칸을 다 채웠다면 소리 내어 읽어보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들려준 다음 "방금 무슨 브랜드라고 했어?"라고 물어보세요. 상대가 돌려준 한마디가 내가 고른 하나와 같다면, 피치는 이미 절반 넘게 완성된 거예요.
혹시 넷째 질문 앞에서 오래 멈춰 있다면, 그건 말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의 기준이 아직 흐릿하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왜 우리인가"에 대한 답은 결국 브랜드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해왔는지에서 나오니까요. 피치를 다듬는 일이 곧 내 브랜드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되는 이유예요. 그 기준을 먼저 정리해보고 싶다면 브랜드 컨셉, 설명할 수 있나요? 를 참고해보셔도 좋아요.
FAQ
Q. 엘리베이터 피치는 얼마나 길어야 하나요?
보통 30초에서 1분 안팎이에요. 글로 보는 것보다 말로 할 때 더 길어지기 때문에, 소리 내어 읽으며 시간을 직접 재보는 게 가장 정확해요.
Q. 엘리베이터 피치와 브랜드 슬로건은 어떻게 다른가요?
슬로건은 브랜드를 짧게 각인시키는 한 줄이고, 엘리베이터 피치는 대상·문제·해결·차별점을 대화로 풀어내는 짧은 소개예요. 다만 피치의 마지막 한 문장이 슬로건처럼 기억되는 경우도 많아요.
Q. 듣는 사람마다 피치를 다르게 해도 되나요?
네, 꺼내는 순서나 강조점은 상대에 맞게 바꿔도 좋아요. 다만 "왜 하필 우리인가"에 대한 답만큼은 누구 앞에서든 같아야 해요.